EVE의 에디터 ‘세상에오럴수가’ 입니다. 세상에 오럴수가 싶은 재밌고 신선한 섹스 화두나 오럴때 저럴 때 매번 달라 헷갈리는 섹스 상식들을 다룹니다.
이브, 저는 섹스할 때는 너무 좋은데 끝나면 항상 우울해요. 괜히 눈물이 나올 것 같고 이 상황이 정말 싫어져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상대는 자주 당황하곤 해요. 그게 참 미안한데 밀려오는 우울함의 원인을 모르겠어요.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요? 해결책이 있나요?
-이브레터에 날아온 질문 中
마음이 맞아 기쁘게 섹스했다. 몸이 맞닿고 쾌감을 나누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포개졌던 몸이 나눠진 직후, 급격한 우울, 상실감, 후회의 감정이 몰려온다. 내가 방금 무슨 일을 한 건지, 옆에 있는 사람은 갑자기 왜 이렇게 꼴 보기가 싫은지,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걱정을 멈출 수 없다. 영문모를 나의 우울함에 상대방은 크게 당황해하고 나는 상대를 당황하게끔 만든 것 같아 더 우울함에 빠진다.
본인의 이야기 같은가? 그 당시 자신을 유별난 인간으로 정의했거나 어딘가 크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지 염려했다면 안심하라. 당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매우 많다. 섹스 후 위와 같은 감정을 겪는 이들을 학계에서는 섹스 후 우울증(PCT : post-coital Dysphoria, post-coital tristesse, post sex blues)라 일컫는다. 슬픔이 밀려오는 사람들을 위해 적었다. 평소보다 조금 차분한 톤으로 섹스 후 우울증에 대해 살펴보자.
😩섹스 후 우울증이란 무엇인가
섹스 후 우울증이란?
흔히들 말하는 현자 타임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차분하고 멍한 상황이 아니라 섹스 후 급격하게 우울함에 빠진 상황이며 위 현상은 성별과 관계없이 골고루 나타난다.
섹스 후 우울증에 대해 가장 권위적인 연구는 호주의 퀸즐랜드대학 로버츠 슈와이처 박사를 필두로 이뤄졌다. 그가 진행한 첫 번째 연구는 2015년 18세에서 55세 사이의 여성 230여 명을 인터뷰하여 섹스 후 불쾌감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46%의 여성들이 살아오면서 한 번 이상 섹스 후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2019년에는 로버트 박사가 1,208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역시 같은 방식으로 다시금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연구 결과를 밝혔다. 그중 41%의 남성이 일생 중 1번 넘게 섹스 후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다고 말했고 20%는 4주 이내로 위와 같은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비록 좁은 지역의 적은 인구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지만 섹스 후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실존함을 시사하는 바이다.
섹스 후 우울증의 증상
섹스 도중이나 섹스 전에는 별 감정의 동요가 없다가 섹스가 끝난 직후 갑자기 시작된다. 약 한 시간 정도로 지속하는 점이 특징이다. 해당 증세를 겪은 이들은 우울의 증상으로 울 것 같은 느낌, 울적함, 공격적인 감정, 불안, 슬픔 등을 꼽았다.
간혹 우울감을 넘어 가벼운 분노도 함께 일어나면서 함께 섹스했던 파트너에게 이유 모를 짜증이나 원망을 표출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우울을 참지 못해 갑자기 이별을 선언하거나 순간적으로 상대와 물리적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들어 집이나 호텔 방을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인터뷰이들은 고백했다. (그야말로 상대는 혼돈의 카오스)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섹스 후 우울증에 관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위에 언급한 두 차례의 연구 외에는 공신력 있는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몇몇 가설이 있을 뿐이다.
과거 성희롱이나 성적 학대 등을 경험한 사람이 섹스 자체를 죄악시하고 혐오하는 경향을 보여 섹스 후 우울증 증세를 나타낸다는 주장, 그리고 오르가즘에 도달할 시 엔도르핀을 포함한 호르몬이 급격히 활성화되는데 이때 우울함이나 불안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는 호르몬인 프로락틴 역시 함께 활성화되어 위와 같은 우울 증세를 경험한다는 가설이 있다. 그러나 두 가설 모두 아직 학계에서 정확한 상관관계에 따른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두 손 놓고 구경만 해야 할까? 우울함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섹스 후 우울증은 가설이 아닌 현실이다. 당사자는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리고 파트너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사자는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파트너에게 설명하기
섹스 후 갑자기 우울한 감정을 표하는 당신을 보며 파트너는 크게 당황할 수 있다. 따라서 우선 이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는 것을 권장한다. 파트너가 온갖 부정적인 생각으로 밤을 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섹스 중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닐까, 내 성적 매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인가, 우리의 관계는 이걸로 종말을 고하는 것인가, 아까 나도 모르게 방귀 뀌었나 등등)
우리는 서로를 절대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어딘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할 본능은 있다. 만약 파트너에게 즉각적이고 명료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우울한 감정을 표출하거나 숨긴다면, 안타깝게도 당신의 파트너는 이 원인 모를 우울의 책임을 본인에게 물을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이 우울함이 당신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했던 섹스와 맺고 있는 관계와는 동떨어진 문제이니 안심하라고 말해주자.
현재 나의 감정과 이에 대한 정의, 이 현상의 반복 이력에 대해 파트너에게 최대한 차분하고 디테일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상대와 함께 이 과정을 극복할 방법에 대해 논의해보도록 하자. 원인 모를 감정의 변화를 직시하고 설명하는 것, 그리고 해결책을 함께 강구해보자는 의지만 보여도 당사자인 당신은 훌륭하게 섹스 후 우울증을 극복할 준비가 된 셈이다.
🙄파트너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상대가 겪는 감정을 재단하거나 가볍게 여기지 말 것
이해하고 포용하는 방법밖엔 없다. 즉, 당신이 가진 이해의 폭과 정서의 성숙도에 따라 문제가 명쾌하게 풀리기도 하고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최악인 것은 상대의 감정을 무효로 하는 것, 특히 섹스 후 우울증은 너 말고도 여러 사람이 겪는 보편적인 감정이니 별거 아니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다. 우울의 정도와 정의는 상대의 관점에서 곱씹고 공감해야 할 문제지 타인이 직접 재단할 내용은 아니다. 상대의 감정과 상태를 여유를 갖고 천천히 듣고 섣불리 주관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말자.
만약 상대가 이 우울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한다면 굳이 더 질문하거나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말고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끔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혹은 상대방에게 내가 어떻게 해 주는 것이 본인의 우울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지 자상하게 물어보자. 당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우울함을 느끼는 상대를 위해 자신이 이 자리에 있고, 또 언제든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이유 모를 우울과 침묵, 혹은 감정의 토로를 맞이하는 것은 비단 섹스 후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어려운 연인 사이의 과제다. 진중한 마음으로 이 과제에 임하되 정답은 없음을 기억하자. 할 수 있는 선까지 배려할 뿐이다. 섹스 후 우울증과 이로 인한 긴 침묵의 시간은 당신과 나눴던 시간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배려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섹스는 감정과 신체가 함께 요동치는 행위다. 섹스 후 우울증은 그 요동쳤던 시간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자. 절대 관계에서 발생한 비극이 아니다. 이 현상을 관계의 심각한 문제로, 이를테면 애정의 식음, 관계의 종말 등으로 해석해 더 큰 우울감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여러모로 함께, 또 홀로 이 지난한 세월을 함께 이겨냈으면 한다.
요약
1. 섹스 후 우울증(PCD)은 현자 타임과는 다르다. 우울의 증상으로는 울 것 같은 느낌, 울적함, 공격적인 감정, 불안, 슬픔 등이 꼽힌다.
2. 과거의 경험이나 섹스 중 호르몬 변화에 따라 위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는 가설이 있지만 아직 정확하게 검증된 바 없다.
3. 당사자라면 이 우울함이 파트너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님을 정확히 전달해야 하며, 파트너라면 이 현상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자.
4. 섹스 후 우울증을 관계의 심각한 문제로, 이를테면 애정의 식음, 관계의 종말 등으로 확대해석해 더 큰 우울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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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및 참고자료
1. Kashdan, T. B., Goodman, F. R., Stiksma, M., Milius, C. R., & McKnight, P. E. (2018). Sexuality leads to boosts in mood and meaning in life with no evidence for the reverse direction: A daily diary investigation. Emotion, 18, 563-567.
2. Meltzer, A., Makhanova, A, & Hicks, L. (2017). Quantifying the sexual afterglow: The lingering benefits of sex and their implication for pair-bonded relationships. Psychological Science, 28, 5, 587-598. https://doi.org/10.1177/0956797617691361
3. Schweitzer, R., O'Brien, J. & Burri, A. (2015). Postcoital dysphoria: prevalence and psychological correlates. Journal of Sexual Medicine, 3, 4, 235-243.
4. Postcoital Dysphoria: Prevalence and Correlates Among Males / Joel Maczkowiack 1, Robert D Schweitzer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