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려운 법이다
이브 직원인 나는 현재 어느 정도 이브컵에 적응해, 넣고 빼는 시간이 매달 단축 되고 있다. 그러나 생리컵이 익숙해진 지금도, 처음 질 길이를 측정하고
생리컵을 삽입/제거하는 과정을 두고 결코 ‘쉽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고, 두려운 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겪을 수 있는 온갖 시행착오를
다 겪으면서 적응을 해 나간 사람이며, 초심자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절실히 알고 있다. 그 두려움을 알기에, 첫 도전을 앞둔 사람들의 떨림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다. 그래서 나의 생리컵 도전기를 최대한 자세하게 적어보려고 한다.
대망의 질 길이 재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질 길이를 재는 과정은 정말 고단했다. 질 입구를 찾는 것도, 중지 손가락을 비집고 넣는 것도 오래 걸렸다. 그럼에도 생리컵을 써보려면
질 길이를 반드시 재야하기에, '퇴보는 없다!'라고
계속 마인드 셋을 했다. 또 여기서 그만두면 다시 축축한 생리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초심자는 힘이 가장
덜 들어가는 ‘변기에 앉는 자세’를 추천한다. 서서하거나 쪼그려 앉으면 균형을 잡기가 어렵고, 하반신에 힘이 들어가 질근육도 수축하게 된다. 몸에 힘을 풀고 최대한 거만한 포즈로 변기에 기대 앉아서 심호흡을 했다.
'질 입구가 대충 여기
쯤이다' 정도는 알았지만, 입구가 워낙 살점 사이에 파묻혀 있는지라 단번에 손가락을 정확히 넣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음순을 최대한
벌려준 뒤(최대한 잘 벌려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항문
바로 위 구멍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질 입구를 찾았다. 그렇게 손가락을 넣기 시작했는데 질이 ‘체감상’ 너무 좁았다. 게다가 무섭기는 또 얼마나 무서운지 어느 정도로 덜덜 떨면서 했냐면, 오른손
중지를 질 입구에 가만히 가져다 대기만 한 채,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천천히 밀었다(내가 나에게 중력을 가한다…) 도저히 오른손의 의지만 가지고는 질 안으로 못 들어가겠더라. 계속 “와 여기로 생리컵이 들어간다고?” 라고 외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신기한 건, 질 입구를 통과하니 그 다음은 쉽더라는
것이었다. 입구를 지난 뒤 느껴진 질 내부는, 혀로 볼을 쓸었을 때처럼 미끈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살일 뿐이었다. 질 안에 손가락을 넣고 약간 아래쪽을 향한다는 느낌으로 만지니까 끝에 뭔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포궁 경부였다. 포궁 경부는 코 끝 정도의 단단한 느낌인데, 이 부분에 닿았다면 손가락을 끝까지 잘 밀어 넣은 거다. (중지
손가락을 다 넣어도 경부에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높은 포궁의 소유자) 포궁 경부에 닿고 나서 손가락이 얼마큼 들어갔는지 확인해 보니, 내
질 길이는 손가락 두 마디 반 정도로 이브컵 S가 적절히 잘 맞을 정도였다. (질 길이 재는 법은 [여기])
두근두근 생리컵 준비하기
퇴근 후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브컵을 끓는 물에 5분간 소독하는 것이었다. 실리콘이 냄비 바닥에 닿아 눌어붙지 않게, 젓가락으로 집어서 4-5분간 보글보글 소독했다. 손톱도 짧게 깎았다. 그리고 이브젤을 준비했다. 손가락을 넣을 때도 빡빡함이 느껴졌는데, 생리컵을 넣으려니 외음부가
건조해질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윤활제라도 있어야 심리적으로 부담이 덜 할 것 같았다. (초심자라면 젤의 도움을 꼭! 받으시라. 젤 없이 넣으면 삽입 시간도 길어지고 여러 번 시도하면
외음부가 아플 수 있는데, 젤이 있으면 훨씬 부드럽고 편하다.)
이브젤 라벤더를 사용했는데, 은은한 라벤더향에 마음이 편해졌다
도전! 생리컵 넣기
#첫 번째 시도 – 패인 : 질 입구가 아닌 곳에 무턱대고 밀어 넣었음
질 길이를 잴 때 오들오들 떨긴 했어도, 손가락을 한 번 넣어보고 나니 자신감이 차올랐다. '어차피 내 몸에 내 손가락 넣는 건데 너무 겁 먹었잖아?' 라는 생각과 함께 질 탐험을 마쳤다는 뿌듯함이 생겼다. 생리컵은 더 잘 넣을 수 있을 거라는 도전의식도 생겼다. 그런데, 역시 과유불급이었다. 너무 자신감이 과했던 탓에 질 입구가
아닌 주변 살점에 생리컵을 무작정 들이밀어버린 거다. 이때부터
질 입구가 조금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넣을 때와 다른 점이, 생리컵에는 감각이 없지 않나. 그래서 '질 입구가 여기다' 싶은
감각이 조금 둔하다. 내가 터득한 팁은 생리컵을 무작정 들이밀지 말고, 양 옆으로 정말 조금씩 생리컵을 왔다 갔다 하면서 ‘오, 들어간다!’ 싶은 움푹한 홈을 찾아내는 거였다.
#두 번째 시도 – 패인 : 질 싸대기
첫 번째 시도에서 나는 초심자에게 가장 수월한 (입구가 좁아지는) '펀치다운 폴딩'으로 삽입을 시도했다. 이브컵은 너무 말랑하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편(심하게 쫀득하거나 단단한 생리컵도 있다)이라 접기가 쉬웠다. 그런데 문제는 생리컵을 접은 채로 유지하기가 꽤나 어렵다는 것이었다. 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손에 힘이 풀리고 저려왔다. 결국 반쯤 들어갔을 때 손을 놓쳐버렸고 외음부에 소위 '질 싸대기'를 맞고 말았다(...) 너무
깜짝 놀라면서 아파서 입이 떡 벌어졌다. 접고 있는 폴딩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지금 잡은 두 손(가락) 절대 놓지 말자
첫 번째, 두 번째 패인의 여파가 커서 외음부가 아팠다. 그래서 따뜻한 물로 외음부 샤워를 했다. 사실 귀나 코 세게 파면 잠시 얼얼한 거랑 똑같아서, 외음부도 따뜻한 물로 5-10분 정도 이완시켜주니 욱신거림이 거의 가라앉았다.
#세 번째 시도 - 패인 : 깊이 넣지 못해 방광 압박감이 듦.
세 번째 시도에서는 생리컵을 놓치지 않고 천천히 잘 넣었다. 하지만 생리컵을 '깊숙하게 넣기'란 역시 어려웠다. 질 깊숙이 넣으려면 생리컵을 쥔 손가락까지 질 안으로 조금 들어가야 하는데, 이 지점에서 막혔다. 생리컵은 어느 정도 들어갔지만 손가락까지는 못 넣겠어서 그대로 놓아버렸다. 그 바람에 생리컵이 끝까지 들어가지 않고 중간에 끼어 방광 압박감이 들었다. 방광은 질과 가까이에 있는 우리 몸의 기관이기 때문에, 생리컵을 깊이 넣지 못하거나 딱딱한 생리컵을 사용했을 경우 방광을 압박해 소변이 마렵거나 복부 팽만감이 들기도 한다. 세 번째 시도 이후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겁먹지 말고 깊숙이
넣어보자. 손가락까지 조금 들어가는 걸 감안해서라도 깊게 넣어보자.
제일 궁금한 두 가지 - 잘 넣었는지, 잘 펴졌는지 확인하는 법
세 번의 시도 끝에 어느 정도 깊숙이 밀어 넣는 것에 성공했다. 복부 팽만감이나 이물감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생겼다. 첫째, '끝까지 넣은 게 맞나?'라는 의문. 마지막 시도에서 꽤나 깊숙이 넣은 것 같은데도 꼬리가
외음부 밖으로 살짝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이브컵 꼬리는 둥글게 생겨서, 꼬리가 외음부를 건드려도 그렇게 많이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꼬리가 외음부 밖으로 나와있다 보니 생리컵이 더 들어갈 수 있는데 다 넣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 내부는 유연한 근육 조직이라, 생리컵을
넣고 요리조리 움직여보면 꼬리가 조금 올라가기도 한다. 그래서 걸어도 보고 누워도 보고 5분 정도 생리컵이 자리 잡기까지 열심히 움직였다. 그 결과, 정말 꼬리까지 질 안으로 쏙 들어가 외음부에 이물감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 궁금증은 '안에서 잘 펴졌을까?'였다. 실링이 잘 되면 질 내부가 진공상태가 되면서 생리컵을 당겼을 때 빠지지 않고 팽팽하게 고정된다. 질에
힘을 줘서 쏙 들어가 있던 꼬리가 살짝 내려오게끔 한 뒤 손으로 꼬리를 당겨보았다. 잘 당겨지지 않았다. 양 옆으로 살살 움직이면서 아래로 빼 보려고도
했는데, 생리컵 밑동이 1/3 이상으로 많이 당겨지지는
않았다. 하, 감격의 순간이었다. 깊숙이 넣은 데다가 실링까지 잘 되다니(나 자신…훌륭해)
거의 다 왔다, 이제 생리컵 빼기다
나는 생리컵을 빼는 것이 모든 과정을 통틀어 가장 쉬웠다. 첫 도전부터 쉽게 뺄 수 있었던
꿀팁을 풀어보겠다. 생리컵을 ‘빼야지’가 아니라 '힘을 줘서 밀어내야지'라고
생각하시라.
“몸으로 힘을 줘서 생리컵을
외음부 바깥으로 최대한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빼기가 쉬워진다.”
볼일 볼 때 항문에 주는 힘을 질에다가 똑같이 줄 수 있다. 그러면 꼬리까지 질 내부로 쏙 들어가 있던 생리컵이 스멀스멀 밖으로 나온다. 그때 생리컵 밑동을 잡고 비틀어서 '쭈왑' 소리가 나게끔 공기를 빼 주고 조심조심 빼면 된다. 여기서 주의할 건, 꼬리 '만' 잡고 빼면 절대 안 된다는 것. 이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꼬리'만' 잡고 내릴
경우 질 내부의 진공상태가 끝까지 유지되면서 질을 '뚫어뻥'으로
뚫은 것과 똑같은 효과가 난다. 꼭 밑동을 집어서 비틀어준 후에 내려야 한다. 이브컵은 초심자를 위한 생리컵이라는 슬로건답게, 생리컵을 뺄 때 미끄러지지 말라고 밑동에 오돌토돌한 띠가 다섯 층이나 둘러져 있다.
이 돌기가 얼마나 구세주 같은지 생리컵을 빼다 보면 알게 된다
우리의 일주일은 더 나아질 수 있다
생리컵을 쓴다고 하면 주변에서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있다. “그거 쓰면
뭐가 좋은데?”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정말 단순하다.
"월경 중인데
옆으로 자고 엎드려 자고 다리를 베개 위에 올리고 자
계단을 두 칸씩 올라도 들썩거릴 생리대가 없어
생리대 안 하니까 바지가 두터워지지 않아
부피 큰 생리대를 안 넣으니 가방이
가벼워
둔한 느낌 없이 몸이 산뜻해"
이렇게 단순한 것들을 두고 ‘편하다’라고
말하는 스스로를 보며, 그동안은 얼마나 당연한 것들을 포기해왔는지를 깨닫는다. 과거의 나는 월경이 참 많은 제약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제약을 스스로 없앨 수 있다는 걸 알고 난 뒤에는, 생리컵을 도전하는 이 모든 과정에 정말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브컵을
알게 돼서, 정말 다행이다. 이전엔 월경에 지배당했다면, 지금은 내가 월경을 지배한다.
“월경 때문에 내 삶의 일부를 포기하지 말자.
우리의 일주일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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